2008년 03월 19일
[얀슈반크마이어] Food 3부작
얀 슈반크마이어. 이름은 상당히 많이 들어봤다. 팀버튼 감독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람. 세계적인 디자이너들 또한 얀 슈반크마이어의 작품을 보고 수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언제나 번뜩이는 기괴한 상상력에 그가 만드는 작품은 모든 사람을 경악하게 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비쥬얼 아티스트. 현존하는 최고의 애니메이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대가. 수 많은 명칭을 듣고 있는 그의 작품을 오늘 처음 보았다.
그리고 모두가 그랬고, 모두가 말했듯이. 나는 경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번뜩이는 기괴한 상상력에 말이다.
얀 슈반크마이어의 Food라는 작품이다. 아침 식사, 점심 식사, 저녁 식사. 이 세가지 짧은 단편이 들어있는 하나의 거대한 Food. 1992년에 이런 괴작이 나왔다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사상 최고의 걸작이라고 불리우는 얀 슈반크마이어의 '대화의 가능성'을 보지 못해 그의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는 하지 않았지만 Food라는 옴니버스 영상을 통해 나는 그의 세계를 잠깐 동안이나마 체험 할 수 있었다. 경악. 도대체 이 사람의 뇌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심상치 않게 시작되는 아침 식사. 한 남자가 들어오고 한 남자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다. 놀랍게도,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은 음식을 만들어주는 기계. 한 남자는 그 기계를 작동시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그런데, 그 기계를 작동 시키는 것이 굉장히 섬뜩하고 그로테스크하다. 무섭다.
그 기계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다 먹자 음식을 먹은 남자는 순식간에 음식을 만들어 주는 기계로 바뀌고 음식을 만들어 주는 기계였던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되어 문을 나선다.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오고 똑같은 광경이 되풀이된다.
나는 이 오싹하고, 기괴하고, 무서운 이 작품을 보며 뒷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앞 10초구간에서 영화는 후에 있을 일을 단편적인 이미지로 전부 보여준다. 기계, 사람, 탁자, 설명문, 벽에 그려진 낙서, 옷이 걸려진 옷걸이까지. 전부 보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보았을 때, 그 한 장의 이미지가 아침 식사라는 단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괜히 최고의 비쥬얼 아티스트라는 말이 있는게 아니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정말이다. 그는 짧은 시간 안에 모든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하고 압축시킨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아침 식사. 사람이 기계가 되고 기계가 사람이 되는. 그리고 계속해서 뒤풀이 되고 그 음식을 만들어 주는 기계를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의 줄이 끝없이 이어진 것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기계화. 정말로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얀 슈반크마이어의 작품은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아침 식사를 보고 인간의 기계화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다소 엽기적인 영상으로 사람이 순식간에 기계가 되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아주 가까운 미래의 엽기적인 형상이 아닐까?
기계에 의존하고, 아예 기계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사람들. 기계는 점차 사람이 되가고... 도대체 정상이 무엇인가. 도대체 사람은 무엇인가. 짧은 시간에 이러한 생각을 유추할 수 있게 해주는 얀 슈반크마이어의 단편적인 이미지는 정말 비정상적일 정도로 놀랍다. 그런 그의 능력은 점심 식사에서도 이어진다.
돈이 많아 보이는 한 남자와 빈곤해 보이는 한 남자. 웨이터는 그들을 계속해서 지나친다. 배가 고픈 그들은 그들 주위에 있는 것을 모두 먹게 된다. 부자 먼저, 가난한 사람이 다음에. 눈치를 보며 먹는 가난한 사람은 나중에 부자에게 잡혀 먹는다.
도대체 이런 영상을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가장 놀라운 점은, 가난한 남자와 돈 많은 남자의 대조되는 영상이다. 돈 많은 남자는 모든 음식을 급하게 먹지 않고 포크와 칼로 잘라 먹는다. 그렇지만 가난한 남자는 계속해서 모든 음식을 손으로 먹는다. 돈 많은 남자는 음식 또한 고급스럽다. 그의 옷을 질기지 않으며, 그의 팬티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가난한 남자의 옷은 질기며, 그의 팬티에서는 악취가 난다.
왜 하필 돈 많은 남자와 가난한 남자의 대조가 계속 될까? 영화는 그렇게 같은 상황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서 다소 엽기적인 내용으로 결말을 짓는다. 점심 식사를 보고 당장에 떠오르는 것은 계급간의 갈등과 약육강식이였다.
물론, 재미를 위해 과장은 굉장히 심하다. 점심 식사에 나오는 돈 많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속이고 등쳐 '먹는다.' 또한 똑같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그는 말도 안 되는 격식을 차린다. 우리가 봤을 때 지극히 역겨운 음식을 최고급 달팽이 요리인냥, 샥스핀인냥 먹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썩소가 절로 나온다. 후반부에서 가난한 남자를 잡아 먹는 것을 보며 그의 행동은 엽기적이다.
소위 엘리트들의 허위 의식에 대한 조롱을 담고 있는 이 점심 식사.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 점은 저 '불 친절한 웨이터'이다. 저 웨이터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계속해서 그들을 지나치고 빠르게 달려간다.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웨이터는 현대 사회의 스피드를 말한다.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모든 것이 초고속이 되어버린 이 현재. 너무나 빨라 버려 우리는 도덕이라는 개념 자체를 잊고 사는게 아닐까? 몇 십년 전만 해도 인터넷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터넷이 정말 빠르게 개발되자 악플 및 여러가지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일들이 발생한다. 너무나도 빨리 변화되는 세상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본질 그 자체를 잊고 사는게 아닐까?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도리, 사람이라면 해야하는 생각. 그 모든 것을 잊게 되는 건 아닐까? 웨이터는 그런 현재의 모습을 보여 줌과 동시에 부자집 도련님과 돈 없는 남자의 행위에 대한 냉소를 날린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지나가는 웨이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지나가는 웨이터. 분명, 그에게는 이 엽기적인 행동은 지극히 '평범한 일'인것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라면 점심 식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그 자체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얀 슈반크마이어의 점심 식사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전부 담고 있다. 그것도 빠른 템포로, 과장과 요약을 놀랍도록 잘 사용해서 말이다.
그리고 저녁 식사... 남자는 테이블에 올려진 모든 양념들을 뿌려 '자신의 팔'을 먹는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자신의 발을 먹고, 자신의 가슴을 먹고, 자신의 생식기를 먹는다. 도대체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뭘까?
여러번 플레이 해봤지만 저녁 식사는 아직 나도 이해를 잘 하지 않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것도 일그러진 우리들의 모습임에는 틀림없다. 왜냐고? 보면서 저런 일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계속해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얀 슈반크마이어. 그는 진정한, 최고의 아티스트이다.
# by | 2008/03/19 01:08 | 또 느낀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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